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개인 투자자와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분노에 차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차전지 열풍의 주역이었던 기업 ‘금양’과 금융감독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확고했습니다. “눈앞에 배터리 공장 건물이 70%나 올라가고 있고, 유망한 기술을 개발해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데, 금감원이 무슨 권리로 유상증자를 틀어막아 유망한 기업의 발목을 잡느냐”는 요지였습니다. 몽골 광산 또한 과거 포스코의 사례처럼 시간이 지나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영역인데, 왜 정부와 언론이 먼저 사기꾼으로 몰아가느냐는 억울함이었습니다.
그의 절박한 심정과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인물의 말을 믿었고, 실제로 눈앞에 거대한 공장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니 “다 와 가는데 정부가 훼방을 놓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본시장의 법전과 공시 데이터를 열어보면, 본질은 ‘유망 기업 죽이기’가 아니라 ‘시장 규칙의 수호’에 가깝습니다. 왜 그의 믿음이 자본시장의 냉혹한 팩트와 어긋나는지, 이야기 형식을 빌려 세 가지 본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1. 금감원은 증사를 ‘금지’한 적이 없다, 룰을 지키라 했을 뿐
첫 번째 오해는 금감원이 깡패처럼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를 강제로 틀어막았다는 생각입니다. 자본시장법상 금융감독원은 특정 기업의 유상증자 자체를 원천 금지할 권한이 없으며, 그런 적도 없습니다.
금감원이 행사한 권한은 자본시장법 제122조에 명시된 ‘증권신고서 정정요구권’입니다.
쉽게 비유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있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빌려 가겠다는 서류를 보니, 이 돈을 정확히 어디에 쓸 것인지, 지금 가지고 있는 빚은 얼마인지, 사업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무엇인지가 엉망진창으로 적혀 있거나 숨겨져 있습니다. 이때 “서류를 똑바로 다시 써오기 전까진 돈을 내줄 수 없다”고 브레이크를 거는 장치가 바로 정정요구권입니다.
금감원은 “돈을 조달하지 마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주주들의 소중한 돈을 수천억 원씩 끌어다 쓸 거라면, 회사의 리스크를 숨김없이 투명하게 밝히고 서류를 다시 써오라”고 요구했을 뿐입니다.
규칙에 맞게 서류를 보완해서 통과시키는 것은 온전히 금양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온전히 밝히는 순간 투자자들이 발을 뺄 것이 두려워 서류 채우기를 질질 끈 것은 금감원이 아니라 금양 자신입니다.
2. 98%가 날아간 매출 전망, 언론이 지워버린 것인가?
두 번째는 몽골 광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자원 개발 영역을 왜 지금 사기로 단정 짓느냐”는 항변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언론의 억측이나 정부의 마녀사냥이 아닙니다. 금양이라는 기업이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한 ‘공시 서류’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금양은 처음에 몽골 광산을 통해 2024년 한 해에만 무려 4,024억 원의 매출과 1,61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공시했습니다. 이 장밋빛 전망에 주가는 폭등했습니다.
그러나 1년 4개월 뒤인 2024년 9월, 금양이 스스로 제출한 정정공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올해 예상 매출을 4,024억 원에서 단 66억 원으로, 무려 98.4%를 삭감한 것입니다. 영업이익 역시 1,610억 원에서 13억 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10년 뒤에 광산이 터지느냐 마느냐의 미지의 영역이 아닙니다. 처음에 주주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제시했던 숫자가 실체 없는 ‘부풀리기’였음을 기업 스스로 도장을 찍어 인정한 팩트입니다.
수천억의 매출이 나올 것처럼 주주들의 돈을 걷어 가놓고, 나중에 가서야 “사실은 60억밖에 안 나옵니다”라고 번복하는 행위를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융당국의 직무유기이자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3. 사기 칠 회사가 어떻게 공장을 70%나 짓느냐는 역설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빠지는 함정이 바로 “눈에 보이는 거대한 공장 건물”이라는 실체입니다. “돈만 먹고 튈 사기꾼이라면 왜 저렇게 수천억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겠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자본시장 역사상 존재했던 가장 파괴적인 사기극들은 단 한 번도 유령회사인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 화려하고 웅장한 ‘실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사기극으로 판명 난 미국의 전기 트럭 회사 ‘니콜라’는 실제로 그럴듯한 트럭 외형을 만들어 보여줬지만 기술이 없어 언덕에서 굴렸고, 피 한 방울로 질병을 진단한다던 ‘테라노스’ 역시 화려한 연구실과 엘리트 임원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공장이 70% 지어졌다는 사실이 그 기업의 미래 기술력이나 재무적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 건물은 주주들이 낸 피 같은 돈과 감당하기 힘든 빚으로 올린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남은 30%를 완공하고, 그 안에 비싼 배터리 제조 장비를 채워 넣고, 원자재를 사서 공장을 돌릴 ‘돈’이 회사에 남아있느냐”였습니다.
금양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자금이 완전히 고갈된 유동성 위기 상태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공장 문을 닫고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하자, 주주들에게 급하게 손을 벌린 것이 이번 유상증자의 민낯입니다. 공장은 기술력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돈이 급해진 원인이었던 셈입니다.
🏁 결론: 주식시장의 목적은 ‘자금조달’이 아닌 ‘신뢰’다
자본시장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돕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만약 돈을 끌어다 쓰는 게 최우선이라면, 어떤 기업이든 그럴듯한 건물 하나 지어놓고 거짓말로 장밋빛 미래를 부풀려 개미들의 돈을 뜯어내도 정부가 입을 닫아야 합니다.
시장 시스템이 유지되는 제1원칙은 ‘투자자 보호와 신뢰’입니다.
금감원이 금양에 날린 경고장은 유망한 기업의 발목을 잡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멀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파산의 벼랑 끝으로 밀려나기 전에, “이 회사의 진짜 주머니 사정과 리스크가 이 정도이니, 제발 눈을 뜨고 현실을 보라”며 쳐준 최소한의 안전펜스였습니다.
신뢰를 잃은 기업의 결말이 어떠한지, 자본시장은 이미 수많은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